#5. 작지만 우주만한 당신을 이젠 내가 안을게

처음으로 작아지는 게 슬펐던 때가 언제였던가- 할머니, 할아버지를 못해도 2주 간격으로 뵙던 때가 있었다. 작아지는 당신들을 알아차리기에는, 감사하게도 당신들의 방문은 꽤나 잦았다. 당신들이 타고 오신 차는 가벼운 법이 없었다. 김치며, 나물이며, 떡이며, 산에서 직접 따신 약초들이 가득 찬 통을 나르기 위해 온 가족이 엘리베이터로 몇 번씩은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먼젓번에 주신 것도 아직 다 못 먹었어요.냉장고에 넣을 데도 없대두..” 하는 말에도 분주함이 서린 몸짓으로 연신 통을 나르시며이렇게 부지런히 갖다 놔야 미안해서라두 다 먹는다며 가쁘게 웃으실 뿐이었다. 실을 때마다 트렁크에 한 바가지 단 물을 들이는 식혜는 꼭 잊지 않으셨다. 삐쩍 마른 큰 손녀는 밥은 쥐꼬리만큼 먹어도 잣을 동동 띄운 식혜는 두 그릇은 뚝딱 비워내니 말이다. 직접 담근 배즙도 빼놓을 수 없다. 허서방은 천식이 있으니. 보나 마나 냉장고엔 여태껏 가져왔던 배즙이 들어차 있겠지만, 혹시 모르니 거를 순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꽉 찬 냉장고는또 다시 버거운 사랑을 삼켜내곤 했다. 당신들의 무릎을 베고는 당신들이 즐겨보시는 드라마를 함께 보곤 했다. “그래서 쟤가 쟤를 좋아하는 거야?뭐 이렇게 복잡해!”점차 머리가 무거워지는 손녀딸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이 점점 줄어드는 당신들 앞에 뻔하디 뻔한 레퍼토리는 늘 새것이 되었다. “이 나물은 뭐야? 참나물이었던가?가장 좋아하는 취나물을 가리키며 묻는다. 상 위를 가득 메운 나물들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그 이름을, 어디에 좋은지를 설명하는 일장연설, 당신들의 그 작은 즐거움은 다시금 이어진다. 낯설래야 낯설 수가 없는 나물 역시 늘 새것이 되곤 했다. 밤이 되면 답이 정해진 잠자리 쟁탈전이 벌어지곤 했다. 옆자리를 두고 투닥이던 손녀딸들은 당신들의 왼 손, 오른 손을 사이 좋게 품에 껴안고 잠이 들었다. 새벽녘이면 답이 정해진 부엌 쟁탈전이 벌어지곤 했다.“아침은 내가 할 테니 제발 가만히 쉬셔!”하던 둘째 딸의 당부는 오랜만에 찾아왔을 늦잠을 지켜주고픈 당신들의 염려에 매번 무너졌다. 떠날 때가 되면 하룻밤 더 자고 가라는 말에 손사래를 치시고는 거실에 고추를 말려 놓았다며 냉장고에 김치, 나물을 게워낸 빈 통을 바삐 챙기셨다. 그 고추는 몇 주 후 고추장으로, 또 허서방이 끔찍이도 좋아하는 고추 튀김이 되어 그 통을 다시 메웠다. 당신들은 아셨다.거실에 말려 놓은 고추들은, 내일 아침 당신들이 가시지 않아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을 것임을. 하지만 내일 아침 당신들이 여전히 이곳에 있다면 사랑하는 둘째 딸이 신경 쓸 게 한 두가지가 아닐 것임을. 손녀딸들이 숨겨놓은 신발 두 짝과 핸드폰을 옷장 안에서, 베란다 화분 틈에서 찾아내면 손녀딸들은 현관문을 막아선 채 마지막 앙탈을 부리곤 했다. 2주 후에 오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서야 길을 내어주는 손녀딸들은 양 볼에 입맞춤을, 터질 듯한 포옹을 퍼붓고는 당신들의 백미러에 작은 점이 될 때까지 양 팔을 힘껏 흔들었다. 양팔을 힘껏 흔드는 그때 뿐이었다.당신들의 품에 안겼던 내가 작아지는 당신들을 보는 것은. "이젠 우리 손주 품에 내가 안겨야겠네" 하며내 품에 안기셨을 때 처음으로 당신들은 작아지셨다.당신들이 작아질 때까지 힘껏 흔들던 양팔은,당신들을 힘껏 안았다.작아지는 당신들에 눈물이 났었다. 괜찮았다. 작아진 당신들을 내가 안으면 그만이니. 지금의 당신들은 자꾸만 작아진다.양팔을 흔들고 있지 않은데,바로 내 눈 앞에 있는데도 작아지는 당신들은나 몰래 자꾸만 작아져 왔나 보다. 애정 어린 당신들의 눈, 그 여전한 눈.그 따뜻한 눈마저, 세월의 무거움에 덮여작아져만 간다는 걸 알았을 때. 그 때였다. 작아지는 당신들에 겁이 났던 게. 늘 그 자리에 꼿꼿이 서서 날 지켜볼 것 같던 당신들의 눈이 점점 작아지다가, 끝내는 그 눈을 뜨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아니 뜨지 않겠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들어서. - 언니가 핸드폰을 샀다며 새로 산 폰으로 아빠를 찍은 사진들을 보내 왔다. 오랜만에 보는 아빠 얼굴을 찬찬히도 들여다 보았다. 카메라가 참 좋은 건지, 아빠의 주름이 는 건지 분간할 수 없었다. 보고싶은 그 얼굴을 보는 게 힘이 들어 눈에 투명한 가림막을 씌웠다. 어느새 빈 곳을 찾기 힘들어진 그 얼굴엔세월이 그득그득 담겨있었다. 늘어가는 세월의 무게에 작아지고 있던 건당신들뿐만이 아니었다. '사랑한단다'는 ‘아버지께 전화 좀 드려라’ 님의 메시지가 잠금 화면에 뜬 것을 보고 한참을 바라보고 있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 작아졌음에도,나의 우주만한 그대들을이젠 내가 안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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