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인생의 터닝포인트에서

안녕, 오랜만에 편지를 보내. 잘 지내고 있어? 4월 벚꽃이 한창일 때 편지를 보냈었는데- 어느새 초록이 무성한 때가 다가왔어. 벚꽃 구경은 실컷 했는지, 봄의 나물을 먹었는지, 여름을 알리는 복숭아는 먹었는지, 초록의 무성함은 만끽하고 있는지 궁금해. 너의 안부도 궁금하고, 내 소식도 전할 겸 이렇게 편지하게 됐어. 지난번 편지의 끄트머리에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게 되었다고 했는데, 기억해? 그 이야기를 해주려 해. 기나긴 편지가 될 것 같아. 사실 아직도 온전히 그 시기를 지나온 건 아닌데 이 시기를 지나고 있는 중에 이야기를 전하는게 더 좋을 것 같아서. 지금이 지나면 또 다른 생각과 감정을 지닌 내가 될테니까! 난 4월 중순,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어. 3월부터 몸이 안좋아졌고 동네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선생님이 갑상선이 부어있으니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하시더라. 겁이 나서였을까, 모르는 척 2주가 지날 때쯤 목이 아파서 병원을 찾았어. 그냥 떼내면 되는 혹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초음파 뒤에 선생님이 혹이 3cm가 넘는다며, 이걸 몰랐냐고 하시더라. 그러게. 알고나니 거울을 볼 때마다 봉곳하게 솟아있는 내 목이 그렇게 잘 보일 수가 없는데. 괜시리 나한테 미안해서 속상하더라. 그때까지도 별일 아닐거라 생각했어. 혹이야 떼내면 되지 뭐 했던 것 같아. 토요일 아침, 병원에서 전화가 왔어. 검사 결과가 안좋다고, 다시 말해 암일 가능성이 있다고. 똑같은 혹인데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은 두렵고 묵직하더라. 병원에 오늘 올 수 있냐 묻길래, 월요일에 가겠다고 했어.쇼룸을 오픈해야 했거든. 웃기지만 그 상황에서도 일이 우선이었던 것 같아.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들어야 할 소식을 최대한 미루고 싶었던 것도 같고..쇼룸근무를 마치고 쇼룸에 혼자 남았을 때에서야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어. ‘아닐거야 아닐거야’ 되뇌었지만, 정말 맞다면? 찾아보기도 무서워서 쇼룸에 오랜 시간 우두커니 앉아있었어. 그러다 마음을 하나하나 토닥이듯 원석을 꿰기 시작했어. 그날이 마침 감정의 바다 샘플 디자인을 하기로 한 날이었거든. 슬퍼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해야하는걸 했던 것 같아. 확실치도 않은 상황에서 미리 슬퍼하고 싶진 않았거든. 파도치는 마음을 겨우 다독여서 샘플디자인을 마쳤는데, 마감하지 않은 샘플을 성급하게 들어올리다 그만 바닥에 흩뿌려지고 말았어. 바닥에 쏟아진 작은 원석 알갱이들을 보는데,‘엉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허겁지겁 집어넣은 불안감이 성큼성큼 눈밖으로 쏟아질 것 같아 무작정 원석들을 줍기 시작했어. ‘맘에 안들던 부분이 있었는데, 잘됐지 뭐.다시 끼우자.차근차근.’ 샘플인지 내 삶인지 모르겠는 대상을 토닥이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어. 원석들을 하나하나 밀어넣을 때마다 두려움, 불안, 걱정이라는 녀석들도 함께 밀어낼 수 있다고 믿었던 건지도 몰라. 다시 두 시간이나 흘렀을까. 끝마칠 때 쯤엔 다행히 마음이 차분해졌고, 밤늦게 본가로 향했어. 마침 외출하셨던 부모님이 역에서 만나자고 하시더라.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게 가장 큰 고민이었어. 사실 병원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도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걸 부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리지’였어. 나보다도 더 속상해 하실게 뻔했거든.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아?결과가 확실히 나오면 말씀을 드릴까도 고민해봤는데, 늘 내가 힘든 건 나누지 않는다고 마음 아파하시는 부모님을 떠올리니 그건 아닌 것 같더라. 나중에 알게 되시면 더 크게 속상해하실 것 같더라구.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어느덧 동네 역에 다다랐고, 부모님의 차로 걸어가며 할 수 있는 건 뻣뻣한 미소를 띄우고 씩씩하게 걷는 것 뿐이었어.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도 온통 ‘어떻게 말하지’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병원에서 연락은 없었냐고 먼저 여쭤보시더라. 심장이 쿵쿵대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어. “안그래도 전화가 왔는데 결과가 안좋을 수도 있다네? 다시 병원 가보기로 했어” 대답을 듣기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근데 부모님은 내 생각 밖의 반응을 보이시더라. 괜찮다며, 오는 길 내내 부모님 주변에 갑상선암을 겪었지만 지금은 건강하게 지내시는 분들의 얘기를 해주셨어. 많이 놀라실 줄 알았는데, 아무일 아니라는 듯이 받아들이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이니까 갑자기 마음이 확 놓이더라.‘그래, 아니겠지만 암이 맞아도 괜찮아.별 일 아냐.잘 이겨내면 되지.’ 그날 밤 뒤척이다가 밤늦게 거실로 나왔는데, 불 꺼진 거실에서 우두커니 앉아있는 아빠를 봤어. 어두운 걸 싫어하셔서 거실에 있을 땐 항상 불을 환하게 켜고 있던 아빠인데. 어둠 속에서 덩그러니 앉아있는 모습이 참 쓰라렸어.그때 깨달았어. 별일 아니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당신의 자식이 걱정하지 않도록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이셨던 거구나. 부모님이란 참 강하구나. 그날 밤 밤새 ‘갑상선암’을 검색하며 잠 못 이룬 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거야. 그렇게 정확한 검사를 위해 큰 병원을 몇 군데 다녔고, 모든 곳에서 99% 암이 맞다는- 크기가 꽤나 큰데 몰랐냐는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자연스레 암환자가 되었어. 그 이후 어떻게 지냈는지, 어떤 생각들을 하고 느꼈는지의 이야기는 앞으로 차차 풀어나갈게. 걱정할까봐 미리 말하자면 나는 5월에 수술을 잘 마쳤고, 든든한 무트 덕에 많이 쉬었어. 2주 뒤 치료를 앞두고 있고, 그 치료도 잘 끝날 것 같아! 다른 환자들에 비해서는 수술이 컸어서 그런지 아직 이전 몸의 50% 정도 돌아온 것 같은데, 요즘엔 쇼룸 출근도 할 정도로 많이 회복했어. 무튼, 이 이야기를 너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유는 이 일이 나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었는지 나누고 싶어서야. 사실 나도 온전히 생각이 정리된 건 아니야. 그 과정에 있고, 어쩌면 언제나 난 그 과정에 있겠지. 그 정제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너에게 작은 힘이 되길 바라. 오랜만에 편지해서 반가웠어.나는 그 다음의 이야기를 하러 또 편지할게! 2022.7.9.인생의 터닝포인트에서, 무늬 Ps. 넌 어떻게 지내고 있어?몸도 마음도 건강한지 궁금하다. 나누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얼마든 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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