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너무 오랜만에 편지했지. 지난 2달 간 잘 지냈어? 나는 수술도, 치료도, 요양도 무사히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왔어. 지난 편지의 네 답장을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어. 모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저마다의 감정의 바다가 있음을 안다는 건 언제나 위로가 되네.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 속에서 방황 아닌 방황을 하느라 늦어졌어. 나의 편지를 기다려줬다면 미안하고, 또 고마워. 이번 편지에서는, 지난 나의 삶을 돌아보며 느끼게 된 것들에 대해 얘기하려 해. 지난 편지는 가족에게 암일지도 모른다고 알렸던 그날 밤에서 끝났는데 기억나? 그날 이후로는 꽤 정신이 없었어. 병원을 알아보고, 다니고, 검사, 또 검사, 기다림. 수술하기 까진 내 삶에 크게 달라진 건 없었어. 그저 안 가던 병원들을 오가고, 먹는 약이 생기고, 주변 사람들이 내 걱정을 하고, 일을 줄인 것. 외부적인 변화보다는, 내 안의 변화가 가장 컸던 것 같아.병의 이유야 명확히 알 수 없다지만, 주변 사람들도 나도 스트레스가 아닌가 싶었어. 그렇게 이전의 삶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됐어. 내 노트북엔 ‘주저리’라는 이름의 폴더가 있어. 그저 쓰고 싶을 때 끄적인 나의 글들이 가득한 폴더인데, 일기도 있고 어떤 주제에 대한 단상도 있고… 내 솔직한 생각과 마음을 알 수 있는 거울이기도 해. 그동안의 나를 돌아볼 요량으로 그 폴더를 들어갔는데, 19년 11월- 그니까 딱 일을 시작한 뒤로부터 정말 눈에 띄게 폴더의 글이 줄어들었더라. 달에 1~2개씩은 썼었는데, 20년도 3개 21년도 2개. 내 마음의 성적표라도 받은 기분이었어. ‘2년 반 동안 어딨던거니 유진아’ 보이지 않는 지난 나를 더듬어보며 꽤나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 열심히 일했다고는 생각했지만, 일밖에 없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거든. 주저리 폴더와 달리, 업무 관련 글을 저장해둔 폴더는 빼곡했어. 거기에서 엿볼 수 있는 마음엔 행복과 성취감도 있었지만, 조바심, 두려움, 작아지는 감정들도 가득하더라. 그리고 그 아래, 비로소 일 아래의 내가 보였어. 불안함에 한시도 스위치를 끄지 않은 나.그렇게 스위치를 잊어버린 나.감정을 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면서, 정작 나는 내 감정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는 게 부끄러웠어. 그렇게 돌아보니, 오포르에서 내보인 감정과 글들이 지금의 내가 아니라 19년 이전의 내 일기장은 아니었을까 싶더라. 기록을 거슬러 오르다 17년도 교환학생 시절의 기록들을 뒤적이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아무렇지 않게 ‘행복’이라는 단어를 곧잘 꺼내 쓰는 내가 있었어. 스스럼 없이 자연스러운 행복을 느끼는 나. (그렇게 5월 탄생석 제품 ‘행복찾기’에 실었던 글을 쓴 것이기도 해.) 황홀한 기분으로 그 기록들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몰라. 내가 아닌 것 같은 그 아이에게 질투심마저 느껴지기도 했어. 너무나도 달라보이는 17년도의 나와 그간 3년의 나를 한 창에 띄워두고는 생각에 잠겼어.17년도의 내가,그간 3년의 나보다 더 행복했던걸까? 나는 그럼 불행했었나? 내가 아픈 걸 알게 되고, “야 일이 뭐가 중요해. 건강이 중요하지..”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 처음엔 맞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나에게 일이 안 중요한가’ 하는 의문이 계속 자라나더라. 그렇게 진지하게 ‘나와 일의 관계’를 고찰해보았어.일을 시작하면서 주저리 폴더에서 글을 찾기 어려웠지만, 업무 관련 글은 빼곡히 썼다고 했잖아. 달리 보면 지난 3년간 내가 없었다기 보단, ‘일하는 나’가 그 어떤 나보다도 크게 자리했던 거야. 그 ‘나’는 다른 방식으로 나를 찾아가고 있었어. 그리고 꿈을 꾸고, 또 실현해 나가고 있었어. 나에게 구체적인 꿈은 없어. 다만 이전부터 내가 하는 일로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는 추상적인 꿈이 있었거든?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니, 지난 시간 동안 나는 치열하게 그 꿈을 실현해내는 삶을 살았던 거야. 그러니까 나에게 일은,나를 찾는 또 하나의 방법이자 꿈을 꾸고 실현하는 과정이었어. 사실 가끔씩 ‘과거의 내가 사라진걸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어. 그럴 때면 괴로운 마음이 들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닌 것 같더라. 그때의 내가 어떻게 사라질 수 있겠어. 과거의 내가 자라 지금의 내가 된 건데. 17년의 나도, 그 이전의 나도 여전히 내 안에 존재해.그저 스위치를 늘 켜둔 탓에, 스위치를 껐을 때의 내가 나올 수가 없었던 거야. 다시 말해, 17년도의 나와- 지난 3년의 나는, 다른 방식으로 행복했어. 내가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해서, ‘주저리’ 폴더에 글이 없다고 해서, 그 시간 동안의 나와 일이 내게 주는 행복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 스위치를 껐을 때의 나도, 켰을 때의 나도-모두 나야. 나는 늘 여기에 있었어. 그저 너무 오래간 스위치를 켜두기만 했을 때, 내가 방전될 수 있음을- 내가 내고 싶은 빛을 내려면 잘 끄기도 해야 함을 배우게 되었어. 달리 보면 일의 스위치를 껐을 때야 비로소 켜지는 스위치도 있을 테니까. 그래서 치료로 쉬는 동안은 최대한 일의 스위치를 꺼보기로 했어. 스위치를 끄는 법을 익히는 것이 내가 더 오래 튼튼히 나아가는 방법이라는 확신이 들었거든. 다음 편지에서 그 이야기를 마저 이어나갈게. 일의 스위치를 어떻게 껐는지, 그 삶은 어땠으며 무엇을 느꼈는지 말야. 만일 너가 난 지금 어디에 있는지- 무언가에 '나'가 가려져 있는 건 아닌지 고민하고 있다면 너는 늘 거기에 있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 다른 모습, 혹은 방법으로 너를 찾고, 넓히고, 또 좁히고 있을 거야. 아직 지금의 너를 규정지을 순 없더라도, 너는 쌓이고 쌓여 더 깊은 너가 될 거야. 다만 그 과정에서 너가 방전되지 않도록 너를 돌봐주었으면 해. 오늘 초록 사이에서 불긋하게 단풍이 든 잎 몇 개를 발견했어. 이제 곧 붉음 속에서 초록 나뭇잎 몇 개를 힘겹게 발견하게 되겠지. 난 이번 여름을 마음 다해 사랑하면서도- 무탈히 가을이 오길, 계절이 흘러있길 바랐었어. 정말 가을이 왔다니, 올 가을도 우리가 붉은 단풍잎을 보게 될 거란 게 새삼스레 기뻐. 초여름 즈음 너에게 처음 편지를 전했던 것 같은데, 계절이 바뀌도록 나의 편지를 소중히 읽어줘서 참 고마워. 또 편지할게,그때까지 건강히 초가을을 만끽하길 바라! 2022.9.7늘 여기에 있어왔던, 앞으로도 있을 무늬 ps. 넌 지금 어디에 있니?